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나미 지로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미나미 총독 시기에 [[창씨개명]]을 강요당한 [[한국인]] 가운데 미나미 지로를 조롱하기 위해 "내가 총독양반보다 형님이다"라는 의미로 미나미 타로나 미나미 이치로 [* 타로, 이치로는 장남에게, 지로는 차남에게 주로 붙이는 이름이다.]라고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. 실제로 이 시기 창씨개명을 강요당한 한국인들 중에 일본어 등의 학문을 배운 사람들 또는 지식인들 가운데는 총독이나 일본을 조롱하는 이름 또는 세태를 풍자하는 이름으로 바꿔 소극적으로 항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.[* 일례로 [[신불출]]의 경우도 창씨개명을 강요당했을 때 구로다 규이치(玄田牛一)라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일본어로 ‘[[개새끼|개자식]]’, ‘[[씨발]]’ 등을 뜻하는 [[칙쇼]](畜生)를 파자한 것이다. 당연히 퇴짜맞자 에하라 노하라(江原野原) 라고 이름을 다시 지었는데 이 역시 "에헤라 놓아라" 를 살짝 바꾼 언어유희이다. 또한 전병하라는 농부도 자신의 이름에 농사 농을 붙여서 전농병하(田農炳夏)로 신고하였다. 이걸 일본어로 읽으면 '''덴노헤이카(천황폐하)'''가 된다. (정확히 말하면 천황의 덴노는 '텐'이라 표기하고 전농의 덴노는 '덴'이라 표기하는 차이점이 있긴 하다.)] 한편 종씨께서 보위에 오르셨다며 그에게 인사를 드리겠다며 남원에서 상경한 한 남(南)씨도 있었다 한다. 친일파로 변절한 [[김활란]]이 미나미 지로를 접견하고는 '''남차랑(미나미 지로)총독 각하는 솔직하고 검소한 인품으로 집안의 아저씨'''같다고 평했다. 김활란은 미나미 지로를 겉모습으로만 봐서 평가했지 속으로 보면 미나미 지로는 데라우치 못지않게 냉혹하고 포악한 자였다. 그 전 총독인 [[우가키 가즈시게]]와 [[사이토 마코토]]가 미나미 지로와 [[데라우치 마사타케]]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다. 평가할 정도로 조선에서의 통치가 최악이었단 말이다.[* 옛날 역사책에서 보면 [[김활란]]이 총독부의 압력과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고 변명하지만 실제로 보면 [[김활란]]은 자발적인 친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. 강압적으로 원하지 않는 친일을 하였다면 소극적으로 해야하거나 아니면 변명거리를 내세워 반민족행위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.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친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.][* 김활란은 김구가 해방 직후 작성 지시한 친일파 살생부에 들어가는 전설적인 친일파다. 이런 자잘한 찬양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진짜 무서운 짓은 평범한 조선인들에게 태평양 전쟁에 자원해서 나가라고 선동을 해 온 것이다.] [[부산동부경찰서]] 입구에 이 사람의 휘호를 새긴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aver?docId=2817188&cid=55777&categoryId=56131|부산진매축기념비]]가 남아있다.[* 좀 더 정확하게는 앞면의 '釜山鎭埋築記念碑'만 그의 글씨이다. [[https://blog.naver.com/choi029/221308631231|참고 링크]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